미나리와 십자가
작년의 “기생충”에 이어 올해는 “미나리”가 한층 기세를 떨치고 있다. 미국에서의 한국영화 이야기이다. 계층 간의 문제를 다룬 기생충은 그렇다고 하여도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미나리가 미국인을 비롯하여 많은 나라에서 관심을 넘어 공감을 갖게 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것은 인류의 모두의 가치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상황은 다르지만 가족 안에서 모두가 경험하는 갈등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가족은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누구보다 가장 극심한 원수가 될 수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모든 결정이 예민한 이민의 삶에서 부부가 각기 다른 주장을 하면서 상대방 의견을 기어코 꺾으려 할 때 그처럼 지옥 같은 현실은 없다.
영화 미나리에서는 서로의 가치를 내세우는 부부의 서로를 향한 거친 언어와 불편한 태도가 관중의 긴장을 끌어올린다. 세대 간의 긴장도 있다. 심장이 아픈 어린 손자는 한국에서 온 할머니의 마음이 아프게 하려는 듯 까탈을 부린다. 가족이 교회에 갔지만 그 미국교회와 한국 가정의 거리감은 여전히 멀었다. 이민 땅에서 남 보기에 무엇인가를 이루어 보려는 남편의 의지에 그 누가 그 어떤 힐난을 퍼부을 수 있겠는가. 그가 쌓아가던 성공의 창고가 불에 타버린다. 어떻게든 딸의 집안을 도우려던 어머니의 실수로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창고를 잃고 잃었던 가족을 찾았다. 불 속에서 남편이 진정으로 건지고자 했던 것은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내였다. 남편이 추구하던 것은 사실 성공이 아니라 가족이었던 것이다. 아내도 그것을 결정적인 순간까지 오해하고 있었다.
모든 가족 안에는 나름대로 중요시 여기는 서로 다른 가치가 있고, 서로가 몰라주는 상처가 있다.
그렇다고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자신의 상처만을 아프다고 내세우면 부부 사이와 세대 간의 골짜기는 더 깊어진다. 그러나 서로의 구원자도 될 수 있다. 갈라서기 직전까지 갔던 부부가 서로를 품으며 망가진 관계를 구원하였고, 불을 낸 이후 넋을 놓은 듯 집을 등지고 정처 없이 가던 길을 막아선 손자 손녀도 할머니를 구원하였다. 할머니는 또 어떤가. 할머니는 미나리 씨앗을 한국에서 가져와 미국의 어느 강가에 심었다. 미나리는 어느 땅에서도 잡초보다 질기고 무엇보다 더 잘 자란다고 한다. 무성히 자랐다. 할머니가 심어 무성히 자란 미나리를 사위가 뽑아 손자에게 건네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할머니는 가족을 구원하였다.
미나리는 가족의 이야기, 이민의 이야기를 넘어 구원의 이야기로 전개되었다. 진정한 구원자는 누구인가. 그 영화 가운데 십자가를 지고 초라하게 걸어가는 사람이 몇 차례 등장한다. 왜 저런 장면을 보여주는지 십자가가 창피하게 보인다. 가만. 언제 십자가가 멋졌던가. 원래 수치스럽게 보이는 것이 십자가가 아니었던가. 묵묵히 길을 걷던 십자가가 영화 속의 사람들도 관중들에게도 무시당하였지만 그 십자가가 들려주는 음성은 여전히 분명했다. 부부여 서로 용서하라. 세대여 서로 사랑하라. 교회와 가정이요 서로 품으라. 미국과 이민자여 서로 감싸라. 영화 가운데 한국에서 온 미나리와 골고다에서 온 십자가는 결코 무관하지 않게 보였다.
04.24.2021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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