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빈자리
내겐 지금 친구가 없다. 친구가 없이도 이렇게 지내왔다. 친구와 너무 멀리 있다. 서로 너무 바쁘다. 이렇게 살게 될 줄 몰랐다. 친구의 빈자리는 누구도 메우지 못한다. 아내가 친구를 겸하여 내 곁에 있을 수 없다. 수많은 지인들, 너무 귀한 분들이다. 그러나 그 분들이 곧 친구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에게 “야! 뭐해?” “너, 이리 빨리 와!” “큰 뒤통수” 이렇게 말할 수도 전화할 수도 별명을 부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나의 지난날의 온갖 실수와 오늘의 엄벙덤벙함을 최대한 감추고 만나야 할 분들이 친구이지는 않으시다. 사역 때문에 달리고 달리면서 간혹 느끼긴 했지만 이제는 친구의 빈자리 때문에 힘들고 서럽다. 모든 주제의 이야기를 서로 털어 놓아도 탈은 안 나고, 쏠쏠한 재미는 넘치고, 잊었던 지난날의 눈과 두려웠던 새로운 날에 대한 눈을 동시에 뜨게 해주는 경이로운 친구가 그립다.
그는 누군가. 김재진. 내 친구는 아니다. 만나 뵌 적 없는 시인이시다. 그 분이 쓴 시 “친구에게”가 마음에 와 닿는다. “어느 날 네가 메마른 들꽃으로 피어/ 흔들리고 있다면/ 소리 없이 구르는 개울 되어/ 네 곁에 흐르리라/ 저물녘 들판에 혼자서서/ 네가 말없이 어둠을 맞이하고 있다면/ 작지만 꺼지지 않는 모닥불 되어/ 네 곁에 타오르리라/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로/ 네가 누군가를 위해 울고 있다면 손수건 되어/ 네 눈물 닦으리라....” 시인의 친구는 대단하시다. 서로 개울 같은 친구, 모닥불 같은 친구, 손수건 같은 친구이셨구나. 그러나 내게도 그 못지않은 친구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빈자리이다. 언제 만나 태우고 태워도 재가 되지 않을 수십 년 이야기를 몰아서 할까? 친구가 내게 올까, 내가 친구에게 가야할까.
서랍 속에서 잠자던 편지를 일으켰다. 그 친구는 나를 “두꺼운 입술”이라고 부른다. 인정한다. 거울을 보면 나의 입술이 얇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때는 실수인척 하면서 “두꺼비 입술”이라고 쓴다.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미국에 있고 그 친구는 한국에 있다. 그 당시에 그는 물리학 공부를 위해 미국에 있었고 나는 한국에 있었다. “두꺼운 입술에게. 꿈에도 그리지 않던 너의 두터운 목소리를 오늘 들으니 자못 옛 생각에 마음이 산란되도다. 한 때를 구가하던 우리의 젊음도 벌써 30 오르막....나사렛 예수. 갈릴리 지방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신의 어린 양.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를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예수. 그를 그토록 고민하게 했던 감람산의 마지막 밤. 그는 무엇 때문에 고민했을까. 신의 아들 예수의 피와 땀. 감람산에 뿌리어진 그 고육의 의미 무엇인가....전능자의 아들, 창조주. 그 예수가 눈물을 피처럼 쏟다.... 그가 잠시 동안 받은 육신의 생. 30여년 인생을 하직하는 그 마지막 밤.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두꺼운 입술. 말해 보게나.... 신실한 나의 친구 두꺼운 입술. 잘 있게....큰 뒤통수” 친구는 예수님을 더 알고 싶어 했다. 특별히 신의 아들, 전능자의 아들, 창조주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의 이유를 나에게 물었다.
내게 친구, 큰 뒤통수의 빈자리가 있듯이 그에게 두꺼운 입술의 빈자리가 있을 것이다. 서로 그 빈자리에 고난의 예수님이 영원한 친구로 계신다. 우리 친구끼리 이야기 범위는 수십 년을 넘지 못한다. 친구 예수님과의 이야기는 영원부터 영원까지이다. 고난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친구, 큰 뒤통수의 빈자리는 그립다. 친구, 예수님의 자리는 놀랍다.
03.13.2021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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