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자일렌
지난주일 오후, 모든 예배가 마친 후에 특별한 기도 모임이 있었다. 당회원과 교역자 그리고 직원들이 함께한 기도 모임이었다. 그렇게 모인 이유는 한 가지였다. 충성스럽게 교회를 관리하며 섬겨 오신 집사님이 허리 신경 수술 후 일주일이 다 되었는데 다리 쪽의 감각이 돌아오지 않아서였다.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집사님 본인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어떤 상황이든지 감사로 받아들이겠다며 담대했다. 앞선 모든 예배에서도 그 사실을 알리고 기도도 했다. 그런데 또 다시 기도 모임을 갖게 되면서 깊이 다가온 것이 있었다. 우리의 안자일렌을 깊이 느끼게 된 것이었다. 안자일렌(Anseilen)은 독일어로 “등산에서 안전을 위하여 서로의 몸을 로프로 잡아매는 일”을 뜻한다. 특별히 누군가 어려움을 당할 때 이 안자일렌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등산의 현장에서 안자일렌 이야기는 끝없이 있으리라. 오래 전 이야기 가운데 박정헌, 최강식 두 산악인 이야기도 있다. 이들은 히말라야의 촐라체(6,440m) 등정에 성공하였다. 그런데 하산 중에 한 명이 크레스바(얼음틈)에 빠지게 되었다. 절대 절명의 위기였는데 그들 사이에 안자일렌이 있어 여러 곳의 부상과 동상이 있었음에도 무사히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죽을 자를 살려준 안자일렌의 사례는 무수히 많을 것이며 반대로 안자일렌의 부실이나 무시로 일어난 정반대의 일들도 적지 않으리라.
안자일렌의 삶, 곧 서로를 묶고 사는 삶은 성경적인 삶이다. 전도서 4장에서 분명히 일러준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진정한 공동체는 생명과 죽음을 공유하는 안자일렌의 차원까지 가야한다. 안자일렌에 노련한 산악인이 함께하고 있다면 그 줄에 묶인 사람들 모두는 얼마나 안심이 되겠는가. 우리의 안자일렌에는 예수님이 계시다. 어떤 크레스바에서도 완벽하게 건져주실 예수님이시다. 어떤 바람에서도 안전하게 감싸주실 예수님이시다. 어떤 등정(登頂)도 두렵지 않다. 우리의 등정은 곧 예수님의 등정이시기 때문이다.
집사님의 감각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너무 행복해 하신다. 우리는 생사고락(生死苦樂)을 같이 하는 안자일렌 공동체임을 다시 확인하셨기 때문이신지 기쁨과 감사가 넘치신다. 올해 교회의 표어 가운데 첫 구절이 “다시 일어나”이다. 집사님은 곧 다시 일어나실 것이다. 이미 그 믿음은 일어나 굳건한 반석 위에 견고히 서 계시다. 집사님뿐이 아니다. 허물어진 것들이, 주저앉아 있던 자들이 다시 일어나야 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의 말씀은 2천 년 전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서 있었던 사건만이 아니라 오늘,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안자일렌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도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01.23.2021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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