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사라진 시대
빌리그레함 목사님을 처음 만난 곳은 1973년 초여름 여의도 광장에서였다. 물론 여러 상황 때문에 직접 얼굴을 맞댈 수는 없었으나 회중석에서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은 그의 생애 마지막 전도집회가 열렸던 2005년 뉴욕에서였다. 그 때는 여의도 때보다 가까이서 뵈었지만 역시 개인적인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분분(紛紛)했으나 나는 들었다. 그가 복음을 매우 쉽고도 분명하게 전하는 것을. 진리를 어려운 사상처럼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당신은 죄인이다.” “당신은 지금 지옥으로 가고 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심을 믿으라.”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천국은 있고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 그가 외친 메시지는 군더더기 없는 희망찬 소식이었다. 진리는 심오하지만 쉽다. 진리는 기준을 말한다.
1948년 7월 17일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날이다. 헌법을 기준으로 모든 법들이 세워졌고 사회질서가 유지된다. 기준이 없는 곳엔 혼돈이 깃든다. 잘못된 기준은 모두를 슬프게 만든다. 자기만의 기준을 무리하게 모두에게 적용시키려 한다면 자기도 피곤하고 많은 사람들도 심히 괴롭다. 일이 기준인 사람은 돈을 많이 준다 해도 직업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몇 대째 같은 일을 이어가는 가정도 적잖이 있다. 돈이 기준인 사람은 돈 따라 자리를 쉽게 옮긴다. 그의 연봉은 올라갈지 모르나 그의 일은 더 이상 깊어지지 않는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사람을 채용할 때 기준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너무 빨리 출세한 사람과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채용을 꺼렸다. 그 이유는 너무 쉽게 출세한 사람은 독선적이기 쉬우며 실패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남의 아픔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늘 기준으로 살다간 사람이 있다. 윤동주 시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날의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다. 기준 없이 살아감이 가장 큰 문제다. 혼돈의 시대에 기준이 있어야 한다. 현실은 기준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실은 자꾸 바뀌기 때문이다. 물론 내 감정이나 세상 여론이 기준이 되면 언젠가 낭패를 본다. 진리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진리는 심오하고 쉬울 뿐 아니라 영원하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것이나 지역적인 것은 진리가 아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변치 않는 것이 진리이다. 진리는 바뀔 수 있다고 말하지 말자. 진리는 다른 것으로 대체불가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여러 영역에서 온갖 것을 등장시켜 진리에 반역(反逆)하여왔다. 그러나 그 어떤 시도도 결국 진리는 하나일 뿐이라는 것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송하고 있지 않은가.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그렇다. 진리를 기준으로 삼으면 어지러운 세상에서 더 이상 요동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된다. 기준이 사라진 시대. 남아 있는 기준이라곤 결코 붙잡을 수 없는 기준. 그러나 우리에게는 기준이 있다. 영원한 진리가 기준이다.
07.18.2020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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