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비극?
누가 앗아갔는가? 교회의 예배, 시민의 생업, 거리의 생기를. 다 빼앗겼다. 잿빛 같은 암울함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아무데도 없다. 절망의 노래가 가슴에서 번져 입술을 메우고 쏟아진다. 어느 덧 봄은 왔건만 저 들녘에 봄은 보이지 않는다. 시인 이상화처럼 이렇게 절규하고 싶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봄은 아직 오지 않았고 아예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며칠 전에 여기저기서 봄꽃들을 보았다. 한 겨우내 다 죽은 것 같던 나무에서 푸르른 생명을 조금씩 내비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왜 이리 봄이 늦냐고 낙심하지 말자. 봄은 없을 것이라고 포기하지 말자. 둘러보라. 이미 산에 들에 봄은 왔다. 맡아보라. 봄내음 가득하다. 희망을 노래하기에 너무 이른 것이 아니라 너무 늦은 것 같다. 왜 그런지 아는가? 십자가의 역설(逆說) 때문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역전(逆轉) 때문이다.
라인홀드 니버는 십자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피상적으로 볼 때 예수는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수는 비극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비극을 초월하는 종교입니다. 눈물은 죽음과 함께 승리 속에 삼키 웁니다. 십자가는 비극적인 것이 아니고, 도리어 비극의 해결입니다. 십자가에서 고통은 하나님의 삶 속으로 옮겨져 극복되어집니다. 그것은 구원의 기초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대부분의 삶을 좌우하는 충동과 우연의 혼돈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삶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연민의 눈물을 갖습니다....”
십자가는 그 비극적 모양과는 달리 비극의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다. 십자가는 비극을 넘어 비극의 해결이다. 십자가는 비극의 해결을 넘어 죽음에의 승리이다. 십자가는 죽음에의 승리를 넘어 하나님과의 화해이다. 십자가가 넘어서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십자가가 이르지 못할 곳은 하나도 없다.
봄날의 푸른 잎은 저절로 솟아오르는 것이 아니다. 봄날의 푸른 잎 사이로 나비들이 훨훨 나는 것은 푸른 잎, 자신의 솜씨가 아니다. 그 푸른 잎 아래에 숨겨져 있는 것이 있다. 뿌리다. 뿌리가 있어 나무는 솟고 풀과 꽃은 흐드러지게 핀다. 뿌리의 처연한 희생이 없이 봄의 그림이나 봄의 노래는 어림도 없다. 꽃, 풀, 나무는 그리고 그 사이를 노니는 나비와 발은 뿌리의 수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음은 십자가의 예수님이 계심이기 때문이다. 십자가가 멈춘 비극을 왜 또 다시 들추어내는가?
나무에게 든든한 뿌리가 있듯이 우리에겐 든든한 십자가가 있다. 지금의 상황이 다 빼앗긴 것 같아도 우리에게 십자가가 있는 한 빼앗긴 것은 하나도 없다. 십자가의 역설은 드러났고, 십자가의 역전은 이미 이루어졌다. 희망을 노래할 준비가 다 되었는가? 같이 불러보자.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산천경계 좋고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 맞아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 찬 곳 희망의 나라로.”
03.21.2020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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