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은 따듯했네
역사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 해 겨울을. 그 해 겨울은 다름 아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020년 겨울이다. 이처럼 참담한 겨울이 또 있었던가. 우한 폐렴의 전염병은 중국을 넘어온 지구를 초토화 시키고 있다. 수많은 자들이 죽어져 가는 가운데 전염병 확진자는 물론 그들과 접촉 또는 슬쩍이라도 지나친 것으로 여겨지는 자, 기침 등 자그마한 의심을 자아내는 자, 아니 모두에게 모두의 마음은 닫혀있다. 모두의 마음을 이처럼 에이는 혹독한 겨울이 달리 있겠는가. 겨울에 일어나는 환난이기에 그 환난이 더 아프고 더 힘들고 더 서럽다. 그래서인가 마지막 환난에 대한 말씀을 하시던 예수님께서도 이런 환난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있지 않기를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 해 겨울은 따듯했네.” 수년 전 겨울, 우리 곁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씨의 작품이다. 영화로도 상영되었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가슴 아픈 6.25전쟁 속의 어느 한 가정이야기, 아니 우리 모든 인생의 이야기이다. 피난 때에 자기만이라도 살아야겠다고 동생의 손을 슬며시 놓았던 여인 수지와 그에게 버려진 여동생 오목 사이에서 계속 펼쳐지는 이야기. 여유 있게 살게 된 언니는 훗날 찾게 된 동생으로 자기의 지난 삶이 드러나고 현재의 삶이 허물어질까 노심초사하면서 그 동생이 죽기까지 적당히 돕기도 하고 크게 괴롭히기도 하는 이중적 인간의 이야기. 작가는 아주 추운 겨울보다 더 매서운 이야기를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라는 역설적인 이름으로 우리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뉴욕에서 보내는 2020년의 겨울 날씨는 예년에 비해 비교적 따듯하다. 전 세계에 불고 있는 2020년 마음의 겨울날씨와는 역설적으로 다르다. 마음에 부는 올해의 이 유례없이 차가운 겨울이 따뜻해질 수 있는 또 다른 역설이 우리에게 있을 수 없는가. 김현태 시인이 쓴 “겨울편지”라는 시가 있다. “그대가 짠 스웨터 잘 입고 있답니다. 입고, 벗을 때마다 정전기가 어찌나 심하던지 머리털까지 쭈뼛쭈뼛 곤두서곤 합니다. 그럴 때면 행복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매 순간 순간마다 뜨거운 그대 사랑이 내 몸에 흐르고 있음이 몸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짜서 보내준 스웨터를 잘 입고 있다는 행복한 편지이다. 그렇다. 뜨개질이 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그 누군가를 위해 짜는 뜨개질이 있다. 따듯한 사랑과 탁월한 솜씨로 추위에 떨 그 누군가를 위해 모자도 뜨고 장갑도 뜨고 스웨터도 뜬다. 그것을 받아 쓰고 끼고 입고하는 자들의 겨울은 따듯할 것이다.
마음의 겨울을 견딜 수 없어 인질 사건을 벌이다 죽게 된 노숙인. 추운 겨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차 안에서 딸들과 함께 얼어 죽은 여자 노숙인. 인생의 추위를 술과 마약으로 녹여버려는 절망적인 노숙인. 그런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보던 워싱턴의 한 대형 법률회사의 젊은 변호사 마이클은 더 이상 자신만의 성공에 취해 있을 수 없어 잘 나가던 변호사의 자리를 내던지고 거리의 사람들을 돕는 자로 나산다. 이 마이클을 주인공으로 다룬 짐 그리샴의 소설 제목은 “거리의 변호사”이다. 거리의 변호사로 살기로 결정을 하고 그 일을 실행한 자신에게 적잖은 고통이 따르지만 마이클의 아름다운 희생을 통해 워싱턴의 겨울은 조금씩 따뜻해져간다.
이번 전염병의 발원지로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경멸을 받으며 춥고 추운 겨울을 보내는 서러움의 땅 우한. 그러한 우한은 중국에만 있지 않다. 추위에 쓰러지고 얼어 죽는 사람들이 워싱턴에만 있지 않다. 이 겨울에 몸이 춥고 마음이 추운 자들이 있는 곳이 다름 아닌 우한이요 워싱턴이다. 이 겨울, 자신의 얼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자기보다 더 추워하는 자들을 위해 스웨터를 짜줄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겨울은 얼마나 따듯할까. 이 겨울, 옷깃을 여미고 나가 여밀 옷조차 없는 거리의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고 그들의 입장을 변호해줄 사람이 있다면 그곳의 겨울은 얼마나 따듯할까. 이 역사적으로 추운 겨울에 나는 수지로 살고 있나 마이클로 살고 있나, 그것이 알고 싶다.
02.08.2020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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