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는 길
2020년 새해다. 아무도 이 2020년을 걸어본 적이 없다. 모두에게 처음 가는 길이며 생소한 길이다. 처음 가는 길을 가는 방식이 여럿 있다. 무작정 간다. 누군가 노래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알려하지 않아도 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저 하늘에 구름 따라, 흐르는 강물을 따라, 정처 없이 걷고만 싶구나. 바람을 벗 삼아가며....” 낭만적이지만 그렇게 새해를 걸어도 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이제껏 살아온 경험을 앞세워 가려고 한다. 경험이 다소 도움이 될 수 있어도 과거로 미래를 열기에는 역부족(力不足)이다. 또 다른 사람은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을 의지하듯이 이런저런 미래지도(?)를 찾아본다. 새해에 점(占)집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고, 다소 복채(卜債)가 적은 길거리 토정비결(土亭秘訣)과 사주팔자(四柱八字)에도 새로운 길을 맡기려한다. 어리석음의 극치(極致)일 뿐이다.
여행할 때 안내자와 함께 갈 때가 있다. 나는 처음이어도 그 길에 익숙한 전문가와 함께라면 두려움은 다운(down)되고 기대감은 업(up)된다. 안내자가 실망스러울 때도 종종 있다. 시간 때우기 식의 안내로 여행의 고단함에 안내의 피곤함을 더해주는 안내자도 있다. 그러나 그 길에 익숙함과 박식(博識)함, 재미로움과 진지함을 가진 안내자를 만날 때도 있었다. 게다가 신앙까지 좋은 안내자를 만나면 그 여행길은 줄곧 휘파람이 나온다.
오래 전 유럽 여행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물론 처음 가보는 어느 지역에서 우리 차에 서로 다른 세 분의 안내자를 모시게(?) 된 것이다. 여행 전체 안내자, 그 지역의 한인 안내자, 그리고 현지인 안내자가 바로 그들이다. 그것이 그 지역의 여행 규정이라고 하였다. 아무튼 다들 그 지역에 일가견(一家見)이 있으시지만 나는 전체 여행 안내자만 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처음부터 우리 여행 그룹이 보고 따라오는 녹색 깃발을 드는 담당자로 자청(自請)하였기에 전체 여행 안내자 옆을 떠날 수 없었다. 내가 목사인 것을 다 알고 있었던 터라 중간에 깃발을 남에게 넘길 상황도 아니었다. 그 전체 안내자는 앞서 말한 안내자의 덕목(德目) 다섯 가지, 곧 익숙, 박식, 재미, 진지, 그리고 신앙을 두루 갖춘 분이었기에 그의 조수(助手)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한 가지만 빼고는.
스위스 산정을 케이블을 타고 올라갈 때 구름 이 잔뜩 끼어 있어 산 아래 전경(全景)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전체 안내자는 실망감을 안고 있는 우리 여행 그룹 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 그룹에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나 밖에 목사는 없었다. “그 목사님이 기도하시면 우리가 저 산정에 올라갈 때 구름이 다 걷혀 산 아래의 맑은 광경을 볼 것입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삼십 여명의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삼삼오오(三三五五) 웃으며 자기 앞에 다가온 케이블카를 탔다. 나도 탔다. 웃을 수는 없었다. 염려와 기도가 섞여 산 정상에 도달했다. 구름은 더 짙어졌고 나는 그 전체 안내인 때문에 산 정상 저 구석에서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의 주인공이 되었었던 그 한 가지만 빼고는.
여행길을 가 본 안내자는 무수히 있어도 새해를 가 본 안내자는 이 세상에 없다. 아니, 계시다. 이 찬송에 그 답이 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네....” 2020년 새해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존 베일리의 새해의 기도를 아실 것이다. “나의 첫 생각은 주님을 향하게 하시고, 나의 첫 감정은 주님을 경배하게 하소서. 나의 첫 언어는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시고, 나의 첫 행동은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 기도하게 하소서.” 거기에 살짝 덧붙여 본다. “나의 첫 걸음 예수님을 따르고 마지막 걸음까지 예수님만 따르게 하소서.”
01.04.2020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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