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얼마 전에 들은 참혹한 속보(速報)에 모두들 마음 아프셨으리라. 지난 10월 23일 영국 남동부 에식스에서 39명의 동사체(凍死體)를 실은 냉동 컨테이너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얼마나 놀라셨는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갈망이 지나쳐 그런 자리라도 잠시 들어가겠다고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것인지, 어떤 배후가 있는 자들의 탐욕이 그들을 속여 그곳으로 내몰았는지 머지않아 수사 결과가 발표될 것이다. 어떻든 애통하다. 이번 사건을 떠나 자기 욕심이 선택의 기준인 사람이 있고 공공(公共)의 유익이 그 기준인 사람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들이 빚어가는 세상이 사뭇 다름도 본다. 선택은 대부분 짧게 이루어지지만 모든 선택의 여파(餘波)는 길고 길다. 과거는 결코 변하지 않지만 미래는 선택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이런 말들의 위력적 실체를 여실히 보여주는 선택은 어디나 있다. 롯과 룻의 각기 다른 선택도 그렇다. 그들의 이름은 비슷하지만 선택은 전혀 달랐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눈에 보이는 것을 선택하였고 나오미의 며느리 룻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선택하였다. 그들의 선택의 기준은 각각 달랐고 그 결과는 그들의 족보(族譜)를 엄청 달라지게 했다.
“훗날, 내가 가장 후회할 것은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훗날에 이무 것도 시도하지 않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직장이라는 익숙한 길을 떠나 아마존닷컴 창업의 길을 선택하였다. 제프 베조스(Jeff Bezos)의 이야기이다. 그의 선택의 기준은 자기가 80세가 되었을 때 지금을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을 것이 무엇인가였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어땠을까.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그의 시를 읽어보니 그의 선택의 기준은 “사람이 적게 간 길”이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 “내가 해야 할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전자(前者)가 허접함을 담고 있다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옳다. 후자(後者)가 사명이라면 함부로 버려선 안 된다. 포기와 끈기의 선택 기준은 사명인가 아닌가이다. 살다보면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이 있다.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급하게 산다고 잘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을 놓치면 안 된다. 마르다는 “급한 일”이 선택의 기준이었고 마리아는 “중요한 일”이 그 기준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마리아는 주님과의 교제라는 중요한 일에 집중하였고 그의 선택을 예수님이 칭찬하셨다. 급한 일은 끊임없이 다가온다. 바쁜 세상 속에서 중요한 일을 구분하여 그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예수님께 칭찬 받는 길이다. 선택에 대한 하나님의 칭찬을 지혜를 선택한 솔로몬도 받았다. 모세는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선택에 상 주실 이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선택만을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선택이라는 방법을 즐겨 사용하신다. 구원의 선택 기준은 “그의 기쁘신 뜻대로”이다. “그의 기쁘신 뜻대로”가 갖는 의미는 너무나 깊고 오묘(奧妙)해서 솔직히 다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 시대에 필요한 일군을 선택하는 공통된 기준은 보다 선명히 알 수 있다. “그의 마음에 합한 자”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은 자라고 해도 좋겠다. 하나님의 기준에 갈렙도 다윗도 합했다. 그들이 살아낸 삶은 가히 초월적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지막이 불러 본다.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11.02.2019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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