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와 목말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木馬)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라는 시(詩)를 알기 전에 회전목마(回轉木馬)가 그렇게 슬픈 것인지 몰랐다. 어렸을 적에 창경원(昌慶苑)에서 탔던 목마는 큰 즐거움과 작은 무서움을 동시에 주었고, 훗날 다른데서 탔던 목마는 내심(內心) 멋진 장군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였는데, 목마를 탄 숙녀 이야기는 목표를 상실 한 채 돌고 도는 젊은 청년들의 노래 같아서 슬펐다.
삭개오의 심정(心情)이 그랬겠다. 큼지막한 사람들이 앞에 둘러서 있으니 어찌 그 안에 내용을 볼 수 있으랴. 요즘에야 볼거리가 너무 많아 무엇을 보아야할지 고민이지만 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딱히 구경거리가 없었다. 길거리 야바위꾼 아저씨들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카드를 돌리는 것을 보노라면 곧 “자~자~ 애들은 가요”라는 쇳소리가 들렸고 여지없이 쫓겨났다. 일 년에 한두 차례 올까 말까한 동네 서커스 공연은 돈을 내고 보는 것이기 때문에 구경하기 쉽지 않았다. 그나마 괜찮았던 것이 차력(借力)이었다. 차력사 아저씨들이 병을 깨거나 입에서 불을 내뿜는 장면은 애들에게도 공개되었지만 앞에 둘러선 어른들 때문에 여전히 보기가 어려웠다. 이럴 때 그 모든 상황을 일거(一擧) 바꾸어 놓은 일이 간혹 있었다. 그런 볼거리가 있던 자리에 같이 있으셨던 아빠가 “성국아 이리 오라” 하시며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아빠 어깨 위로 목말을 태워주시면 나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놀라운 광경(光景)을 잘 볼 수 있었다. 내가 탄 목마는 돌고 돌다가 내리면 그 뿐이었으나, 아빠가 태워준 목말은 나로 항상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주셨다.
탕자(蕩子)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도 우리를 찾고 찾아 그 어깨에 메신다. 그리고 즐거워하신다. 우리는 절망의 골짜기에서 헤매던 우리들은 예수님의 어깨 위에서 더 이상 절망이 아닌 새로운 희망의 세계를 보게 된다. 이런 고백이 있지 않은가.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당신이 나를 일으켜주어 나는 산 위에 설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폭풍의 바다를 걷게 하십니다. 내가 당신의 어깨 위에 있을 때 나는 강합니다. 당신은 나를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그렇다. 그 분의 어깨에서 나의 약함은 그의 강함이 된다. 그 분의 어깨에서 그 분의 방향은 나의 방향이 된다. 그 분의 어깨에서 그 분의 길은 나의 길이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회전목마에서는 어지러운 현실을 맛보았고 아빠의 목말에서는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나의 어렸을 적을 기억하며 나도 두 아들이 어렸을 적에 목말을 태워주곤 했다. 그들은 나의 목말 위에서 어떤 세계를 보았을까? 놀이동산에 가면 아이들이 타고 놀 것이 회전목마 뿐 아니라 재미있게 생긴 이름도 모를 기구들이 많다. 놀이티켓을 사주는 아빠도 좋지만 목말을 태워주는 아빠들이 필요하다. 나를 부르며 번쩍 들어 목말을 태워주시던 아버님은 이제 안 계시다. 계셔도 내가 어찌 아버님의 목말을 탈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들어 올려 여전히 그 어깨에 메시고 나를 보라 하신다. 더 높은 하늘을! 더 먼 땅을! 그 분의 어깨 위에 올라가기 전에 내 어깨는 움츠려져 있었는데 그 어깨에서 나는 위풍당당(威風堂堂)해진다.
가을바람이 분다. 숙녀가 탄 목마는 가을 속으로 떠났지만 내가 탄 목말은 가을 안에서 달린다.
10/05/2019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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