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지 않는 노포(老鋪)를 넘어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8일 LA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한항공 경영권을 타의(他意)로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이다.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기술과 경영의 힘으로 하늘 길을 비롯 물류(物流) 한국의 길을 열었다는 조양호 회장이나 대한항공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이렇게 인재(人才)와 기업이 쉽게 흔들려서야 되겠냐는 안타까움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한순간에 사라진 인재와 대기업들도 적지 않고, 단명(短命)과 무명(無名)의 자영업과 자영업자는 그야말로 부지기수(不知其數) 이다.
노포(老鋪) 문화가 한국에서는 그리고 이민사회에서는 뿌리내릴 수 없는가. 노포란 일본에서 몇 대째를 이어가는 오래된 가게를 일컫는다. 세월이 가고 비바람이 불어도 잘 죽지 않는 가게가 노포이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노포는 705년에 세워진 “게이운칸 료칸(숙박시설)”이다. 지금도 예약은 필수이며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포이다. 미국에는 1753년부터 이어온 레스토랑 “The Pirates’ House”가 가장 오래 된 노포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은 1896년도에 세워진 “두산”이다. 추억의 “활명수(1897)”와 이름이 살짝 아쉬운 “몽고간장(1905)”도 있다. 이민 사회에서 오래된 역사는 일반기업이 아니라 교회, 하와이에 세워진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1903)”이다.
노포의 핵심에는 인재가 있다고 한다. 최고의 노포에는 최고 인재가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한국은 인재의 하향 평준화가 이루어진지가 이미 오래인데, 그나마 어렵사리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인재들을 뚝뚝 꺾어 버리는 매몰찬 문화의 폐해(弊害)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노포의 원조(元朝) 격인 일본 노포에는 아홉 가지 인재 육성비결이 있다고 한다.
1)최고 경영자가 직접 인재육성에 나선다. 2)기본에 충실한 인재를 키운다. 3)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배가 후배를 가르친다. 4)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5)과거에서 배운다. 6)지켜야 할 고집은 지킨다. 7)교육효과를 경영성과로 연결시킨다. 8)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9)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 아홉 가지는 무엇을 말하는가? 인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한 사람을 일컫는다. 인재는 매사에 서두르지 않으나 자기를 성장시키는 일에는 부지런한 자임을 말한다. 인재란 해아래 새 것이 없음을 알았는지(?) 과거에서 잘 배우나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변화에 민감하여 과감히 새로운 미래에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주며, 인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지는 것임도 일러주고 있다.
한인 이민사회는 인재가 자라날 토양(土壤) 인가? 인재를 가르칠 멘토(mentor)나 그 가르침을 수용할 멘티(mentee)는 충분히 있는가? 한인이민교회에는 영적기업(靈的企業)이라 할 이민 교회를 섬길 인재군(人才群)이 충분한가? 이민교회 1세대 지도자들의 퇴장은 벌써 시작되어 그 마무리 단계에 이르고 있다. 그들의 혁혁(奕奕)한 역할과 공로는 말로 다할 수 없다. 그 중 인재를 키우는 일은 어떠했을까?
모세는 여호수아를 키워 그로 가나안 정복의 선봉(先鋒)에 서게 하였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 누구도 다음 지도자로 키우지 못해 먼 훗날 바벨론 유수(幽囚)의 단초(端初)를 제공하였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민교회의 1세대는 인재를 키우는데 있어서 모세에 가까웠는가, 여호수아와 비슷했었나? 적절하고 예리한 질문 같으나 우문(愚問)이기도 하다. 노포가 인재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고 그래서 인재를 육성하는데 심혈(心血)을 기울이고 있다면, 교회는 인재양육을 넘어 부활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상 교회의 문제는 인재 고갈(枯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 능력의 부재(不在)이다. 고(故) 안이숙 사모님의 책 가운데 “당신은 죽어요, 그런데 안 죽어요”라는 책이 있다. 책 제목부터가 절대희망이 아닌가. 물론 그 내용은 죽음으로도 막을 수 없는 부활의 능력을 절절히 보여준다. 죽음을 죽이고 생명을 부여한 부활의 능력은 노포의 인재양육과는 그 결을 달리한다.
간단(間斷)없는 인재양육으로 영원을 꿈꾸는 노포가 즐비하다. 그들의 꿈과는 달리 언젠가 노포는 인재부재와 함께, 그리고 역사의 단절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부활의 능력을 덧입은 교회는 사라지지 않고, 사라질 수 없고, 사라져서도 안 된다.
자칫 노포만도 못한 교회라는 소리를 들을까 삼가 조심하자. 그리고 낙심하지 말자. 교회 앞에 그 어떤 세력도 교회가 가지고 있는 부활의 능력을 제압할 힘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잘 죽지 않는 노포를 넘어서 결코 죽지 않는 교회가 있다.
04.13.2019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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