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한 만남과 완성된 헤어짐, 플레루 안에서
지난 3주간 동안 매주 장례식이 있었다. 모두 남편들이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 곁을 떠나 주님의 품에 안기는 시간들이었다. 앞선 첫 장례식에서 남편을 벌써 그리워하는 권사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어려운 병 수발을 정성껏 다 하셨음을 보았는데도 “여보, 미안해요. 더 잘해주지 못해서....”라고 나직막이 되뇌는 소리도 들었다. 두 번째 장례식에서는 남편을 사모하며 터뜨린 권사님의 통곡이 있었다. 그 애절한 슬픔이 모두를 숙연(肅然)케 했다. 지난주에는 46세의 가장(家長)이 아내와 딸 넷을 두고 홀연(忽然)히 떠났다. 아직은 너무 어린 아이들을 그 장례식에서 보면서 나 또한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하나님이 친히 아버지가 되시리라” 불변의 소망을 일러주었지만 지금은 그리고 한참동안 그 아이들에겐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또 있었다. 그 와중(渦中) 어느 날 아침, 한 남자 분이 찾아온 것이다. 그의 아내가 떠난 지 수개월이 되었는데 그 빈자리의 아픔으로 흐느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매년 이 주간에 아무 일도 못하는 목사님과 아예 3월 한 달 온 몸이 아픈 그 목사님의 사모님을 알고 있다. 수년 전 그들의 곁을 떠난 아들이 생각나서이다. 만남과 헤어짐의 교차로(交叉路)에서 울고 우는 사람들.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 그렇다. 모든 만남은 언젠가의 헤어짐을 내포(內包)하고 있다. 만남에는 우연(偶然)이 없다. 모든 만남은 섭리(攝理)이다. 우연한 만남이 없듯이 우연한 끝남도 없다. 만남을 시작하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듯 그것을 끝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헤어짐이 필연적이라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그 날은 준비되어야 한다.
헤어질 그 사람의 빈자리는 내 생각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 빈자리의 서글픈 울림은 휭휭 거리며 내 삶을 계속 휘감아 갈 것이다. 그 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오늘, 내 앞의 그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자. 만남의 내용이 허접하지 않도록 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채우자. 만남과 헤어짐이 크로노스(Chronos), 그저 일반적인 시간으로만 채워져서야 되겠는가. 만남과 헤어짐이 주님 안에서 의미 있는 카이로스(Kairos) 시간으로 채워진다면 너무 좋겠다. 아니, 만남과 헤어짐이 카이로스를 넘어 완성의 시간, 플레루(Pleroo)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충만한 만남과 완성된 헤어짐, 플레루 안에 있다. 그 언젠가 예고 없는 헤어짐이 오더라도 기약이 있고 소망이 있는 헤어짐이 되도록 플레루 안에 그대와 나의 만남을 두자.
사순절 하늘을 본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시간을 초월한 하나님과 예수님의 하나 되심, 역사 속에서 잠시 헤어질 때 그 헤어짐은 완성의 시간이셨다. 충만한 만남과 완성된 헤어짐, 플레루 안에서. 성도들의 헤어짐의 애끓는 아픔을 보면서, 우리 주 예수님의 저 골고다 외침을 들으면서, 내 가슴에 끓어올라 터진 명제(命題)이다. 명제여 삶이 되라.
03.30.2019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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