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돌아 보니
며칠 전 어린 손녀가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가는 층계를 기어 올라갔다. 한 칸 올라가고 또 한 칸 올라가면서 꼭 반복하는 것이 있었다. 뒤돌아보는 것이었다. 자기 뒤에 누가 있는가를 계속 확인하는 것 같았다. 자기의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름 용기를 내어 다음 칸으로 올라가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 삶에서 뒤돌아보는 것은 필요하다. 어떻게 앞만 보고 살겠는가.
한국에서 사역할 때 교회 사역자 중에 찬양사역하시는 전도사님이 계셨다. 탁월한 은사를 가지신 분이다. 영성 깊은 찬양인도는 물론 모든 악기도 잘 다루시고 찬양 곡도 잘 만드셨다. 여러 일로 힘들었을 때 그 분이 만든 “주의 은혜라”는 곡을 부르고 또 부른 적이 있었다. 저무는 2020년에 그가 만든 찬양 그 곡이 생각났다. 가사는 이렇다.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돌아보니/ 짧은 내 인생길/ 오직 주의 은혜라/ 주의 은혜라/ 주의 은혜라/ 다 함이 없는 사랑/ 달려갈 길 모두 마치고/ 주 얼굴 볼 때/ 나는 공로 전혀 없도다/ 오직 주의 은혜라”
사실, 지난 일을 다 기억하다면 몹시 괴로울 것이다. 지난 아픔 상처 감정들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다면 그처럼 힘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독일의 심리학자인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오래 전 16년간에 걸쳐 인간의 망각실험을 했다고 한다. 그가 내놓은 결론은 인간은 기억한 것의 절반 정도는 1시간 내에 잊어버리고, 하루가 지나면 약 70%, 1달이 지나면 약 80% 정도 잊어버린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렇듯 우리의 모든 과거는 기억 또는 망각으로 남아 있다. 어떤 사람은 기억이 또렷하여 같은 이야기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없이 반목하면서 식사자리의 가족들에게 또는 설교 자리의 성도들을 지치게 할 수 있다. 어떤 과거는 차라리 망각이 축복인 면이 많다. 그러나 이 하나가지 만은 잊지 말자. 지난날 내 삶을 돌보아주시고 지켜주시고 오늘까지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오늘이라는 시간에 지난날을 뒤돌아보고 그 일마다 때마다 깊이 배인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한 사람은 내일을 기대해도 좋다. 어제가 오늘을 빚고 오늘이 내일을 만드는 것이 삶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어제를 은혜로 바라보는 자들이 오늘은 나의 공로로 내일은 세상 방식으로 살 턱이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그의 지난 삶을 이 한 구절로 압축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렇다. 바울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은혜의 하나님께 충성으로 보답했다. 우리에게 뒤돌아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망이 빠진 회고가 어떻게 충분한 의미가 있겠는가.
돌아봄은 앞 내다봄을 요청한다. 현란한 은혜의 과거는 찬란한 은혜의 미래를 보장한다. 2020년을 돌아보니 은혜였듯이 2021년도 역시 은혜로 가득 찰 것이다. 우리는 어떤 자세로 새해를 맞이할 것인가. 은혜의 하나님께 감사, 감사, 또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은혜의 하나님께 충성을 다짐하며 새해를 맞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12.26.2020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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