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보고서
지난 5월 4일이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 “기획위원회” 영상 회의가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에 교회가 어떠해야 할지 논의하면서 위원들에게 몇 가지 주제로 연구하여 보고서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지난 19일 “코로나19와 교회”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받아 보게 되었다. 보름 만에 받게 된 보고서는 결코 짧지 않은 내용이었다. 최선을 다한 모습이 보고서 곳곳에 스며있었다. 기뻤다.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 보고서 위에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또 구제적인 방향 설정에 도움을 얻을 수 있음이 분명했다.
신학교가 on-line 수업으로 역사적인 학기를 마치어 간다. 신학생들이 각 과목에서 요청하는 과제물을 대부분 제출하였다. 학업보고서이다. 필자의 과목에서도 두 개의 과제물을 제출토록 했다. 그 중의 하나는 책을 읽고 3페이지로 간단히 깨달은 점을 요약하여 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학생은 열두 배가 넘는 37페이지로 작성해서 제출했다. 그 양(量)의 많음에 놀랐고 질(質)의 높음에 놀랐다. 흐뭇했다. 최선을 다한 보고서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필자가 속한 교단의 총회가 있었다. 지금은 처음 겪는 것이 대부분이듯이 처음 경험하는 on-line 총회로 진행되었다. 지난 임원들의 아름다운 수고가 미리 받아 본 책자(冊子)로 그리고 직접 구두(口頭)로 결산되고 보고되는 것을 듣고 보았다. 그 출발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일 년이 다 지나고 결산 보고를 한 것이다. 새로운 임원들도 시작하면서 임기가 끝나는 그 날의 결산 보고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으리라.
지난달에는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장영춘 원로목사님의 장례예배가 있었다.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목사님의 인생 결산서, 사역 보고서를 엿볼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겠지만 너무 이름다운 보고서를 가지시고 하나님께로 가신 것 같았다. 목사님 삶과 사역이 남기신 감동의 여운은 내 생애에 가시지 않을 것이다. 사도 바울도 그렇지 않은가. 그의 하나님께 드린 보고서를 우리도 같이 읽어보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나는 달려갈 길을 다 달렸습니다. 나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얼마나 깔끔한 보고서인가. 얼마나 진력(盡力)을 다한 인생 결산인가. 사도 바울이 생애는 감격, 그 이상이다.
최선을 다한 여러 보고서들을 듣고 보면서 훗날 하나님 앞에 드릴 내 인생의 보고서는 어떠할까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께서 받아보시고 “잘 했다” 하실 보고서가 준비되고 있는지 자성(自省)의 시간을 가져 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보고서이지만 나 혼자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 혼자 쓴다면 그 졸렬함으로 심히 부끄러울 것이다. 그러나 성령님이 함께하신다면 풍성한 보고서를 쓸 수 있으리라. 내 삶에 맺혀진 성령의 열매가 바로 주님 앞에 내놓을 보고의 내용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는가.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무시다가 승천하셨다. 그리고 열흘 후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다. 약속하신 성령강림이 나와 상관이 없다면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이제 길은 분명하다. 그 날에 하나님 앞에 드릴 보고서는 성령님과 함께 만들어가야 함을 깊이 깨달았다.
“하나님!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05.23.2020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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